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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군의 천안 세성산 전투와 역사적 의의1894 Donghak Peasant Army's Battle of Seseongsan Mountain in Cheonan and its historical significance

Other Titles
1894 Donghak Peasant Army's Battle of Seseongsan Mountain in Cheonan and its historical significance
Authors
배항섭[배항섭]
Issue Date
2020
Publisher
호서사학회
Keywords
Tonghak Peasant War; Cheonan; Mokcheon; Seseongsan Mountain; Kim Hwa-sung; 동학농민전쟁; 천안; 목천; 세성산; 김화성
Citation
역사와 담론, no.96, pp.73 - 120
Indexed
KCI
Journal Title
역사와 담론
Number
96
Start Page
73
End Page
120
URI
https://scholarx.skku.edu/handle/2021.sw.skku/93904
DOI
10.22899/hosuh..96.202010.73
ISSN
1226-8089
Abstract
이 글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 당시 충청도 세성산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전개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해 서술한 것이다. 세성산은 감영과 병영이 있던 공주와 청주 사이에 위치하는 요충지로 서울로 통하는 길목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하하는 관군의 배후를 위협할 수도 있는 지점이었다. 관군 내부에서도 세성산을 먼저 공격할 것이지, 공주를 먼저 구원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관군은 먼저 세성산 공격을 감행했다. 관군의 판단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세성산 공격은 세성산이 가지는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뿐만 아니라 세성산의 농민군을 격파함으로써 선봉진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농민군의 기세를 꺾음으로써 장차 전개될 농민군과의 전투에서 승기를 다져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세성산 전투에서 관군이 승리한 것은 관군의 사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세성산에서 노획한 농민군의 무기나 식량 규모를 볼 때 세상산 농민군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면, 농민군은 남하하는 관군의 뒷목을 노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며, 이는 관군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을 초래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측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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