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암서원(廣巖書院)의 명칭(名稱)과 배향(配享)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Naming(名稱) and Enshrinement(配享) of Gwangam Seowon(廣巖書院)
  • 정원영

초록

본 연구는 17세기 조선 성리학자(性理學者) 우담(愚潭)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을 주벽(主壁)으로 배향한 광암서원(廣巖書院)을 핵심 사례로 설정하고, 서원 명칭의 변천 과정과 최종 명칭인 광암(廣巖)의 기원을 사료적으로 규명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나아가 서원(書院)의 독향(獨享) 후 추배(追配)된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서원의 위상과 학맥 계승 양상에 관해 조명한다. 광암서원의 명칭 변천은 서원의 이중적 기능인 학문 수양의 ‘장수지소(藏修之 所)’와 선현의 자취를 기리는 ‘장구지소(杖屨之所)’ 사이의 지향점(指向點)을 절충(折衷)한 결과이다. 초기 명칭인 ‘도동(道東)’은 정시한이 퇴계학파 내에서 점유하는 도학적 정통성과 사상적 이상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였으나, 명칭의 보편성으로인한 정체성 혼란에 직면하였다. 이에 본고는 유림이 배향 인물의 구체적인 행적이깃든 지리적 상징인 ‘광암’을 최종 명칭으로 채택함으로써, 서원의 독자적인 지역적 권위와 정체성을 명료화했음을 사료적으로 증명한다. 주벽 정시한 외에 해좌 정범조(丁範祖)와 병산 한치응(韓致應)을 추배한 과정은광암서원이 학문적 정통성과 사회적 규범성을 동시에 확보하려 했던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정범조의 추배는 가학(家學) 계승을 통해 학맥의 수직적 연속성을 공고히 하였고, 한치응의 추배는 당대 사회의 보편적 윤리인 의리(義 理) 수호를 수용함으로써 서원의 담론적 범위를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광암서원이 명칭 변경과 추배라는 제도적 방편을 통해‘내부적 결집’과 ‘외부적 확장’이라는 이중 목표를 어떻게 실현했는지 분석함으로써, 조선 후기 서원 운영의 능동적 생존 전략을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는 기존에 논의되지 않았던 광암서원 명칭의 복잡한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광암’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불분명했던 점을 해소함으로써 서원의역사적 배경과 상징성을 구체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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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암서원(廣巖書院)의 명칭(名稱)과 배향(配享)에 관한 연구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Naming(名稱) and Enshrinement(配享) of Gwangam Seowon(廣巖書院)
저자
정원영
DOI
10.30594/kss.2025.12.21.11
발행일
2025-12
유형
Y
저널명
한국서원학보
21
페이지
337 ~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