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宋 熙寧 3년(1070)의 科擧와 政論 - ‘保守 輿論’과 ‘科場 政治化’를 중심으로 -
Civil Service Examinations and Political Discourse in Northern Song Xining 3 (1070): Focusing on “Conservative Public Opinion” and the “Politicization of the Examination Hall”
  • 김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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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熙寧 3년(1070)의 殿試에서 시험 방식을 돌연 策問으로 선회하게 된 배경과 그 목적을 단순히 제도 변경의 맥락에서 찾는 데 그치지 않고, ‘變法’이라는 당시의 특수한 정치 국면과 연계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皇帝의 명의로 작성된 策問이 朝廷의 정책 지향을 宣傳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였고, 이 시험 답안의 채점 결과가 심각한 政論의 분열을 초래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策問을 ‘여론 선점’의 수단으로 활용한 정황을 포착하는 데 논의의 초점을 두었다. 아울러 神宗과 王安石이 이른바 ‘流俗과의 戰爭’을 시사하게 된 정치적 배경을 면밀히 검토한 후, 그 시점이 殿試 策問을 도입한 시점과 명확히 부합한다는 사실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策問’을 매개로 한 ‘科場’이 朝廷 여론의 새로운 경합지가 될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策問을 매개로 한 여론 공방은 일회성 殿試 科場에만 국한되지 않고, 같은 달의 館職 시험, 같은 해 가을의 制科 御試, 이듬해 太學 學官의 私試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해 나갔다. 이른바 ‘科場의 政治化’ 현상이 포착되는 것이다. 정치 질서와 사회 규범의 정통성을 둘러싼 가치 체계 간의 치열한 경합은 결국 ‘科場’을 정책 담론의 새로운 각축장으로 변모시켰고, 朝廷 여론의 중심은 變法 초기의 言論에서 科場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한다면, 熙寧 3년 殿試 策問의 도입은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니었다. 보수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가 투영된 의도적이고 정치적인 대응책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수 여론을 통제하려는 일관된 경향은 오래지 않아 ‘一道德, 同風俗’의 지향 아래 전면적인 ‘사상의 통제’ 작업에 착수하게 되는 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키워드

Civil Service ExaminationPalace ExaminationImperial Policy QuestionExamination HallPublic OpinionPolitical Discourse科擧殿試策問科場輿論政論
제목
北宋 熙寧 3년(1070)의 科擧와 政論 - ‘保守 輿論’과 ‘科場 政治化’를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Civil Service Examinations and Political Discourse in Northern Song Xining 3 (1070): Focusing on “Conservative Public Opinion” and the “Politicization of the Examination Hall”
저자
김병진
발행일
2025-08
유형
Y
저널명
중국학보
113
페이지
289 ~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