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초록
비교언어학은 근대 독일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한 가톨릭에 맞서기 위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루터파 신학자들은 독일어가 히브리어가 아닌 바벨탑 이전에 파생한 언어라 주장하며 독일어의 신성성을 강조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정당화하려 하였다. 17세기에 활동했던 뵈메(Jakob Böhme, 1575~1624), 쇼텔리우스(Justus Schottelius, 1612~167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와 같은 독일의 루터파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민족을 같은 언어를 쓰는 집단이라 간주하였으며, 독일어가 바벨탑 이전에 기원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와 같은 18세기 철학자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인도 문화 예찬론에 영향을 받아 힌두쿠시-히말라야 산맥 일대의 고산·고원지대를 언어와 민족의 기원지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786년 영국의 동양학자 존스(William Jones, 1746~1794)가 문법의 비교를 통해 원인도유럽어설을 제시하자, 아델룽(Johann Christoph Adelung, 1732~1806), 슐레겔(Friedrich Schlegel, 1772~1829), 로데(Johann Gottlieb Rhode, 1762~1827)와 같은 비교언어학의 선구자들은 헤르더 등이 제시한 가설을 산스크리트어와 젠드어 자료를 통해 증명하려 하였다. 당시 이들은 고대어에 기독교적 신성성의 원형이 남아있다고 판단하였으며, 원시 독일어가 아주 이른 시기에 분화된 언어이기 때문에 당대 실전된 독일인의 윤리적 우수성을 언어 연구를 통해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클라프로트(Julius Heinrich Klaproth, 1783~1835)의 『다언어 아시아(Asia polyglotta)』가 출간된 1823년을 기점으로 이 학문은 민족의 우열을 종교가 아닌 체질적 특징을 바탕으로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즉 백인의 인종적 우수성 때문에 독일인이 포함된 인도게르만인 또는 아리아인의 언어가 유색 인종의 언어보다 우월하며, 혼혈에 의해 이 우수성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키워드
- 제목
- 근대 독일 비교언어학의 형성 과정:종교적 민족주의에서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로
- 제목 (타언어)
- The Formation of Comparative Linguistics in Modern Germany:From Religious Nationalism to Racial Nationalism
- 저자
- 박해운
- 발행일
- 2025-03
- 유형
- Y
- 저널명
- 학림
- 권
- 55
- 페이지
- 391 ~ 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