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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 YIHAN;
-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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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代의 服色制度는 단순한 복식 관련 규범을 넘어, 皇權의 정당성과 사회 계급 질서를 상징하는 중요한 제도로 기능하였다. 이 제도는 秦에서 비롯되어 五德終始說을 바탕으로 黑色을 正色으로 삼아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漢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더욱 발전시켜 통치의 정통성과 권위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한나라 초기의 통치 이념은 진의 멸망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였으며, 이에 따라 高祖와 그 신하들은 禮와 律을 병행하는 정치 체제를 구축하였다. 복색 제도 또한 이러한 체제의 일환으로 확립되었다. 고조는 北畤를 설치하여 祭天 의례를 시행함으로써 天命의 계승을 선포하였고, 叔孫通이 제정한 예의를 바탕으로 천자의 복색 체계를 확립하였다. 惠帝에서 高后 집권기에 이르기까지 국정은 ‘休養生息’의 기조 아래 안정적 운영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禮制나 복식 제도에 대한 큰 변화는 없었다. 史記 ·「呂后本紀」의 기록에 따르면, 고후의 집정 시기 국정 운영은 “不出房戶”고 평가되며, 이는 당시 국가 정책이 외부 개혁보다는 중앙 권력 내부의 갈등 조정과 균형 유지에 집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배경에서 복색 제도는 새로운 정책적 검토나 개정을 받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 元封 7년(기원전 104년), 武帝는 封禪, 正朔 개정, 服色 변경 등 일련의 의례와 제도를 통해 천명 계승의 정당성을 천명하고, 자신의 권위를 신격화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정삭과 복색 제도는 제도적으로 확립되었으며, 이후로도 큰 변화 없이 후대에 계승되었다. 무제 시기의 복색 제도는 중앙집권 체제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특히 제후왕과 지방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역 사회의 경우, 중앙에서 복색 제도를 엄격히 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행 과정에서는 일정한 불일치가 존재하였다. 張家山 한묘와 長沙 馬王堆 한묘 등에서 출토된 遣策 자료는 지역 관리 및 귀족층이 복색 선택에 있어 일정한 불일치를 행사하였음을 보여주며, 중앙의 규범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출토 자료는 복색 제도의 지방 집행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음을 반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앙집권이 점차 강화됨에 따라 복색 제도는 지역에서도 점차 규범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일부 관리나 귀족의 미준수 사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대 중후기로 갈수록 제도의 적용 범위는 점차 확대되었다. 한대의 복색 제도는 사회 계층 구분에 있어 중대한 기능을 하였을 뿐 아니라, 중앙집권과 지역 세력 간 권력관계를 상징하는 제도로 작용하였다. 지역 세력이 확장되는 상황 속에서, 중앙은 복색 제도를 통해 지역 통제력을 제고하였고, 제후왕 및 지역 세력을 약화하는 데 있어 정치적 도구로 적극 활용하였다. 결론적으로, 한대의 복색 제도는 진대의 제도를 계승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중앙 권력을 공고히 하고 사회 질서를 규범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지역 사회의 집행 과정에서 일정한 불일치가 존재하였으나, 중앙집권의 심화와 함께 복색 제도는 중앙과 지역 간 권력관계를 상징하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한대 복색 제도의 전개는 사회 계급의 고정화를 반영함과 동시에,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의 심화와 안정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漢代 ‘易服色’ 제도의 계승과 의미
- 제목 (타언어)
- The Inheritance and Significance of the Han Dynasty’s ‘Change of Clothing Colors’ System
- 저자
- TIAN YIHAN; 김경호
- 발행일
- 2025-04
- 유형
- Y
- 저널명
- 동서인문
- 호
- 27
- 페이지
- 151 ~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