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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權尙夏와 柳致明의 상례 절차를 기록한 喪事 日記를 중심으로, 조선 시대 私葬에서의 朝祖儀 설행의 실제와 예학적 의미를 검토한 것이다. 조조의는 古禮에서부터 『朱子家禮』 등 예학사에서 중요한 상례 절차였으나, 그 해석과 적용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박례경과 김동근의 연구가 國葬에서의 논의를 다루었다면, 이 논문은 私葬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예학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고 변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상사 일기’는 특정 인물의 임종과 죽음 이후 상례 절차와 진행과정을 기록한 일기이다. 이 기록들은 당대 유학자들이 상례를 치르면서 직면한 예학적 쟁점들과 그 해결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조조의 설행을 둘러싼 논쟁은 고례의 해석, 『주자가례』와의 관계, 時宜에 따른 변통 등 예학의 핵심 문제들을 드러낸다. 본 논문은 먼저 조조의를 둘러싼 예학적 쟁점들을 정리하고, 다음으로 권상하와 류치명을 기록 대상으로 삼는 상사 일기에 나타나는 조조의 설행의 구체적 양상과 논쟁을 분석한다. 연구 결과, 조조의는 국장과 사장 모두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었다. 국장의 경우, 孝宗 대 金集의 제안으로 논의가 처음 시작되었으나 실천의 어려움으로 불발되었고, 英祖대에 이르러 『國朝喪禮補編』에 수록되었으나, 正祖는 다시 이를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국제에서 조조의는 한 번도 설행되지 않았다. 사장의 경우, 金長生을 통해 조조에 대한 논쟁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국장에 있어서는 조조의 國制化 여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면, 사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조조가 설행되었으나 그 설행의 구체적 방식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는 차이를 보인다. 그 구체적 사례를 玄尙璧의 「昭陽戴絰錄」에 나타난 권상하의 상례에서의 조조의 설행 및 柳廷鎬의 「葬事時日記」 및 윤최식의 「會葬錄」에 나타난 류치명의 상례에서의 조조의 설행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들은 조조의 의미와 관련 절차와의 설행 순서 및 靈柩를 받들어 조조를 행할 것인가, 魂帛으로 대신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하였는데 三禮ㆍ『주자가례』ㆍ『家禮儀節』ㆍ『白虎通』ㆍ『常變通攷』 등의 예설과 家家禮의 전통 및 현실적 상황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예의 이상과 현실 사례에서 고례와 『주자가례』의 해석, 이상적 예제와 현실적 여건의 괴리, 가문의 전통과 표준 예제 사이의 갈등, 형식절 절차와 내면적 애통함 사이의 균형 문제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經道와 權道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음을 밝혔다. 본 연구는 기존에 진행된 거시적 예학 연구와 달리 상사 일기라는 구체적 사료를 통해 예학 이론의 실천 양상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국장 중심의 조조의 연구를 사장으로 확장하여 사대부 사회에서 예 실천의 실상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키워드
- 제목
- 조선시대 私葬에서 朝祖儀 設行의 실제와 예학적 의미 -喪事 日記에 나타나는 조조의 논쟁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The Practice and Ritual Significance of Jojoui (朝祖儀) in Sajang (私葬) during the Joseon Dynasty -Focusing on Debates over Jojoui as Recorded in Sangsa ilgi (喪事 日記)-
- 저자
- 안지현
- 발행일
- 2026-03
- 유형
- Y
- 저널명
- 민족문화
- 권
- 72
- 페이지
- 251 ~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