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북간도 대한국민회 결성 과정
The process of forming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North Gando in 1919
  • 양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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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1919년 북간도에서 대한국민회가 결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대한국민회 결성 과정에서 대종교도와 공교도들이 이탈한 이유는 무엇인지 답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국내외의 정세에 북간도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대응하여 활동하고 대한국민회를 결성하게 되었는지를파악하고자 한다. 1918년 말, 북간도에도 윌슨Wilson 대통령이 선언했던 14개조 평화 원칙이 전달되었다. 북간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할 대표자를 뽑고 국내외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운동을 준비하기시작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먼저 독립선언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북간도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에 기독교, 대종교, 공교 등 여러 종교신자들이 조선독립의사회를 설립하고 1919년 3월 13일 독립선언축하식을 시작으로 북간도와 함경도 지역의 독립선언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3월 말 조선독립의사회는 조선독립기성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조선독립기성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고 임시헌장이 반포되자 조선독립기성회의 ‘조선’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대한국민회’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여러 종교 신자들이 모여 결성된 조선독립의사회나 조선독립기성회와는 다르게, 대한국민회에서 대종교도들과 공교도들이 이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종교도들의 이탈은 조선독립기성회 내부에서 단체 주도권을 차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로 초래되었다. 반면 공교도의 이탈은 단체 주도권을 차지하지 못한 문제만이 아니었다. 공교도들은 복벽주의적인정치지향을 갖고 있었으므로, 공화주의적 성격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대한국민회에는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탈한 대종교도들과 공교도들은 연합하여 정의단을 조직하였다. 이처럼 국민회 결성 당시 공교도와 대종교도의 이탈은 급변하던 시기 북간도의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방략 선택의 문제가 결부된 일이었다. 대한국민회는 대종교도와 공교도가 이탈한 이후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하여 일부 천주교·천도교 계열을 포함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로 인해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지역에서 통일된 독립운동기관을 자임하고자 하는 근간이 흔들리게 되었다. 국민회는 북로군정서 및 대한광복단등을 통합해 북간도의 통일된 독립운동단체를 만들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키워드

대한국민회북간도국민회북간도한인사회조선독립의사회조선독립기성회정의단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DaehanGukminhoe)The North Gando Korean national associationKorean Communities in North GandoThe Joseon Independence Council (JoseonDokrib- Uisahoe)The Joseon Indeperdence Preparatory Association (JoseonDokribGiseonghoe)Justice Group
제목
1919년 북간도 대한국민회 결성 과정
제목 (타언어)
The process of forming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in North Gando in 1919
저자
양정은
DOI
10.15799/kimos.2025..89.003
발행일
2025-02
유형
Y
저널명
한국독립운동사연구
89
페이지
101 ~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