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1922 연해주 한인 기독교 세력의 정치활동 -연해주한인기독청년회를 중심으로-
Political Activities of the Korean Christian Faction in the Primorsky Krai, 1918-1922: Focusing on the Korean Christian Youth Association
  • 김슬기

초록

이 연구는 러시아 내전 중이었던 1918~1922년간에 활동한 ‘연해주 한인 기독교 세력’의 정치활동을 고찰했다. 당시 연해주의 정세는 볼셰비키와 반볼셰비키의 대결, 반볼셰비키를 지원하는 일본군의 움직임, 그리고극동 패권을 둘러싼 미일 긴장관계가 얽혀있었다. 본 연구는 조선의 독립을 뒷받침할 요인으로 반제국주의를 내건 볼셰비키의 지원보다, 일본의 극동 내 세력 강화를 경계하는 미국의 지원을 선호한 기독교계 한인들의 존재에 주목했다. “연해주 한인 기독교 세력”은 내전기에 기독청년회를 기반으로 안창호와 정치적 견해를 함께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연해주에 진출한 연합군의 기독교 조직과 연계하여 운동 기반을 구축하려한 정치세력이다. 미국 국민회의 원동 대표 였던 이강을 중심으로, 기독교계 이주민 유력자와 1919년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연계 활동을 위해 이주한 기독교계 망명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사상적 기반으로기독교 신앙과 실력양성론을, 정치전략으로 독립전쟁 준비론과 미일개전론을 견지하여, 연해주에 진출한 연합국의 기독교 조직과 정치적 연대를모색했다. 대외적으로 종교활동을 표방하면서 상하이-러시아-국내 독립운동가의 소식을 전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세력의 활동은 기독교계 한인들의 반종교적 입장의 볼셰비키에 대한간접적 반대를 드러낸다. 이는 볼셰비키 적군 측으로 내전에 참전하여 일본군에 대항한 한인사회당이나 대한국민의회와는 현저히 다른 방식의 정치운동이었다. 그러나 연해주 현지 정치세력과의 연대가 없었기 때문에, 1922년 말 소비에트가 지역을 장악하고 이듬해 미국 기독청년회를 축출하자 이 세력도 활동 동력을 상실하게되었다는 한계가 명확했다. 그럼에도“연해주 한인 기독교 세력”의 존재는 종교가 식민지민의 반제국주의 운동전략 선택에서 국적이나 계급 이상의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작동했음을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연구는 사회주의운동사의 시작점으로 여겨졌던 러시아 내전기를 사회주의를 수용하지 않고 기독교에 기반한 활동을 펼친 사람들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한국 독립운동사를 종교와 이념, 국제정세라는 다층적 맥락에서조망하였다. 이는 독립 운동 내부의 차이를 이념 대립의 구도로 환원하지않고, 국제적 기독교 연대와 개인의 종교적 정체성 속에서 살펴보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의 확장에 기여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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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18~1922 연해주 한인 기독교 세력의 정치활동 -연해주한인기독청년회를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Political Activities of the Korean Christian Faction in the Primorsky Krai, 1918-1922: Focusing on the Korean Christian Youth Association
저자
김슬기
DOI
10.15799/kimos.2025..91.005
발행일
2025-08
유형
Y
저널명
한국독립운동사연구
91
페이지
137 ~ 169